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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책읽어주는 남자

책읽어주는 남자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36세 여인 한나와 15세 소년 베르크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나치의 시대상,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그림자가 그려져 있다. 병에 걸린 한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중에 구토를 한다. 그것을 본 한 여인이 소년을 도와준다. 그 여인의 직업은 전차차장이다. 그 도움은 우연으로 끝나지 않고, 두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 운명이 된다. 소년은 그녀를 만나 그해 폭풍과 같은 봄을 보낸다. 그리고 책 읽어주기와 샤워, 사랑행위, 그리고 나란히 누워있기로 이어지는 추억을 만든다. 소설의 진행에서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이 몇 가지 생긴다.

첫째, 두 사람 사이에서 극단적인 갈등이다. 새벽에 소년은 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잠깐 산책을 다녀오겠다는 쪽지를 남겼다. 소년이 다시 돌아왔을 때, 쪽지는 없어졌고, 그 여인은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 소년은 여인의 과격한 행동의 이유가 궁금했다. 둘째, 전차차징인 그녀가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수수께끼 같은 내용이다. 어느 날 그녀는 수수께끼처럼 사라진다. 그 후 소년은 법학을 전공하고 우연한 기회에 그 녀를 다시 만난다. 세미나관계로 일주일에 한번 방문하게 된 법정에서였는데, 그 녀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강제 수용소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사지로 보낸 혐의로 기소되었던 것이다. 그 녀는 전직 강제수용소 여자 감시원이었다. 가장 큰 죄목은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여자들을 이송 중에 한 교회에 가두어 모두 불에 타죽도록 한 혐의이다. 주인공 베르크는 이 사실을 알고 나치 범죄자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죄책감을 갖게 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점은 수수께끼 같은 그 녀의 행동이다. 그것은 그 녀가 잔혹하다는 것보다는 그 녀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녀는 글을 읽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다는 것에 걷잡을 수 없는 수치감을 갖고 있다. 이것이 그 녀에게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인생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소년에게 과격한 행동을 보였던 것도 쪽지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법정에서도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보고서 작성을 자신이 했다고 시인하여 나치 수용소에서 저지른 죄의 벌을 모두 떠맡는다.

베르크는 현실적인 것 쪽으로 아무리 애써도 그의 등에 와서 매달리는 과거의 흔적들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결혼하여 딸까지 낳은 후 이혼한 그는 결국 한나와의 사랑이 그와 그 녀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한나가 수감된 지 8년이 지난 때부터 10년간 자신이 읽은 책을 큰소리로 녹음하여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보내준다.

애당초 내가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한 까닭은 이 이야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글로 쓰려고 하니까 기억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내게서 빠져 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글을 통해서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러나 글쓰기 역시 나의 기억들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건드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는 우리의 이야기와 화해했다. 그러자 우리의 이야기는 돌아왔다.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내게 더 이상 슬픔을 주지 않을 정도로 둥글고 완결되고 나름대로의 방향을 지난 모습으로. 나는 지난 오랜 세월 우리의 이야기가 정말로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행복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진실되다고 생각하며, 바로 그런 까닭에 그것이 슬픈 이야기냐 아니면 행복한 이야기냐 하는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책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저, 김재혁 역. 시공사. 서울. 2014. P272-273) 화자는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답은 부정적이다. 독일의 전체 과거가 과거로 존재하듯 주인공의 과거는 영원히 그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개인적인 사랑이야기와 정치적인 갈등,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것 등 인간사의 복잡한 문제들이 전개된다. 전쟁세대와 전후 세대 간의 갈등과 공존, 죄를 지은 여인을 사랑하는 데서 오는 이해와 책임이라는 메시지는 우리 삶 속에서도 공명이 된다.

성경 속에서 호세아라는 인물은 가정사가 매우 아픈 사연을 간직한 주인공이다. 그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을 했고, 그의 아내는 음란한 자식들을 낳았다. 그렇지만 호세아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경고하시고자 명령하신 것이라고 고백을 하였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13:9)

책을 읽어주는 남자를 읽고 책의 메시지로 우리 삶을 투영해 본다. 개인들의 삶 속에서는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그 많은 일들을 마음속에 묻어두기도 하고, 작은 가슴속에서는 몇 가지 사연들을 간직하기도 한다. 개인의 삶의 아픔은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할까? 아픈 사연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건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