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향하는 새벽길이 풍성하다. 떨어진 낙엽을 밟으면 ‘사각사각’ 그 소리가 좋다. 낙엽을 밟는 소리가 마른 빨래를 만지는 것 같은 개운함을 주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만수동 아파트 안길에 나무들에 단풍이 들어 보기에 참 좋다. 이 때쯤이면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길목마다 풍경화가 된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보석들이 달린다. 떨어진 나뭇잎들은 바람에 이끌려 구석진 곳마다 한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낙엽들은 산자락이나 시골에 있으면 떨어진 그 모습대로 안식을 누릴 텐데, 도심지에서는 경비원들에게 쓰레기로 취급받겠지?’ 가을에 나뭇잎이 다 떨어지도록 경비원들에겐 나뭇잎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경비원은 나무를 흔들어 다 떨어뜨리는 사람도 보았다. 급한 사람인게다. 세월을 길게 살다보면 먼저 간다고 해서 난 것도 없는데 왜 저리 서두를까 싶다. 집에 다가설 때 낯선 할머니 한 분이 뒷짐을 지며 앞서 가신다. 뒷모습을 보니 손에 낙엽 몇 장을 쥐고 있다. 이분에겐 말을 걸어도 좋겠다 싶어 “낙엽을 주우셨네요?” 라고 말하니 “낙엽이 예뻐서요.” 라고 대답을 해준다. 서로가 아침 햇살 같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할머니의 얼굴에도 보석 같은 빛이 난다.
도서관 옆에 초등학교가 있다. 전임 교장이 하루는 전화가 왔다. 학교 담장 은행나무에서 낙엽도 떨어지고, 시야도 가린다고 나뭇가지를 잘라달라는 내용이었다. 은행나무 잎들이 땅에 떨어지면 청소를 해야 하고, 또 비에 젖으면 미끄럽기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 초등학교와 도서관 담장 사이로 서 있는 은행나무가 멀쑥해 보인다. 가을엔 아름답게 노란 단풍잎이 멋들고, 땅에 떨어진 은행나무 잎도 정취가 있는데 귀찮은 대상이 되고 말다니. 구청 직원에게 부탁을 해서 초등학교 담장으로 넘어간 은행나무 가지들을 모두 잘라 내고 말았다. 지난봄에 가지가 잘려진 은행나무들은 팔 한쪽이 없는 모습으로 노란 단풍이 들어 도서관 담장 아래로만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다.
거실에 장미꽃이 계속 피고 있다. 지난 8월 강 목사 생일 선물로 김 간사 남자 친구가 전해 준 것인데, 벌써 3달째 장미꽃이 피고 지고를 계속한다. 강 목사는 참 신기하다며 매일 감탄을 한다. 처음엔 건성으로 듣던 나도 장미꽃이 계속 꽃봉오리가 대 여섯 개 새로 생기며 계속 피고지고를 계속 하기에 신기하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미꽃이 크게 탐스럽게 핀 것도 아니고 아주 별처럼 작은 장미꽃이지만 계속 피어나니까 자꾸 보게 되고 말을 건네게 된다. “장미꽃아, 참으로 신기하다.” “이 꽃 참으로 신기한데?” 내 생각엔 장미꽃이 우리가 해주는 신기하다는 그 말을 듣다보니까 계속 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장미꽃은 창가에서 오늘도 새로운 꽃봉오리를 준비하며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가을 길에 떨어지는 낙엽도, 아직 나무에 달린 가을 잎들도 모두들 햇살에 비치며 보석처럼 빛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해주며 감탄할 때 가을나무들은 옷을 벗으면서도 기뻐할 것 같고, 떨어지는 낙엽들도 춤을 출 것이다. 가을나무들을 보면서 우리 네 인생을 반추해본다. 최전엽 시인이 ‘자작나무 숲’이라는 시집을 보내왔다. 벌써 3집을 발행하는 80대 여시인의 역작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시 중에 자작나무 숲이란 시어가 재미있다.
자작나무 숲길에 해골이 앉아있네/ 나무의자에 다리를 꼬고 희죽 웃네/ 어딘가 본 듯한 구석/
남 말 마셔/ 자네도 해골이야/ 지르보는 눈살 꽂히네/
맞네/ 자작나무 숲길에서/ 문제 하나 풀었네/
백야처럼 오솔한 저녁/ 붕대감은 자작나무/ 목발 짚고 걸어오네/
큰사랑도서관 서가와 책상도 자작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자작나무로 된 가구들이 인기가 꽤 많다. 고급스런 자작나무에서 해골을 발견하는 시인의 마음엔 말 속에 긍정의 마음을 심어내며 문제를 풀었다는 지혜가 숨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