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아름다운 무렵 최전엽
물왕리 두루미
서 있기만 해도 고결한 삶의 가치 팔랑개비 행지는 벱새나 하는 짓 숨겨둔 비밀 하나 갖는 것도 매력인가 숨겨둔 비밀 하나 갖는 것도 매력인가 둘만의 속내 꿍꿍이 감추고 끝없이 우아하게 마주서서 탐색전만 벌이는 두루미 한 쌍 물왕리에 있다.
딸나무
외진담 모롱이 딸나무 보면 왠지 슬퍼진다
화려한 붉은 꽃들 많은데 잎사이 드문드문 눈물 고인 하얀 얼굴
딸나무 곁은 오갈 때마다 안가슴 저려온다
들에 피는 찔레도 꽃잎이 다섯인데 모자란 네 잎이 마냥 수줍은 딸나무 살포시 안아주고 싶다
이름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주듯 모녀의 슬픔을 나누고 가을장마에 젖고 있는 딸나무
살며시 귀대어 보면 들릴 것같은 깊은 이야기
씨를 보면 심고 싶다
씨를 보면 심고 싶다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
돌 틈에 떨어져도 내미는 억척빼기 힘이 있기 때문
단지 내 화단 한쪽 봉숭아 씨를 심다
싹이 돋고 잎이 나 정강이 아래만큼 컸다
꽃피고 열매 맺어 톡톡 여무는 알
개미가 물고 가기전 씨받이 강보에 받아 주리라
낙엽
작은 회오리 감겨 굴러가는 낙엽
구르는 것은 구석을 좋아해
고맙네
고얀 것 코로나 바이러스 역병에 요절난 일상 잘 견디고 재때 제자리 제 모습 제 구실 지켜줘
고맙네
반성
말머리 뚝뚝 잘라 아교처럼 붙여서
참새 떼 곡물창고 앞에 모여 지껄이는 소리들
귀가 보배라도 뭔 말인지 모르겠네
멍충이 궁글 재간 아직 있어 세상 시비 가릴 수 있고
오늘이 마지막 이라면 잠들기 전
입술로 뉘 가슴에 아픈 못질 아내했나 되돌아 본다
착한 남자
누굴 바람으로 아나
나, 불편하고 마뜩찮으니 그 친구 멀리하면 아니 되겠소? 세상에 착한 남자
말에도 향기가
만고에 썩지 않을 바른 말 고운 말
마음껏 쓰고 써도 무량대수
동토도 녹이고 차꼬도 푸는데
패려궂은 말로 마음 상케 해서야
말에도 향기가 있다
노을이 아름다울 무렵
내 주는 강한 성
님의 능한 팔 간절해=할 때
초고속 철로 타고 종착역에서
신발 벗고 뛰어 내릴 쯤
어디선가 디이잉 으스름 가르는 종소리
불근 노을이 아름다울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