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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을 다시 사랑한다는 것 가까운 사람을 다시 사랑한다는 것 인생의 어느 지점에 와서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곁에 머무는 것.상대가 말할 때 대답을 준비하기보다 끝까지 듣는 것.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것.어쩌면 그것이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나는 아직 잘하지 못한다.오늘도 실수할 것이다.또 말을 잘못할 것이고, 때로는 아내의 마음을 놓칠 것이다.그러나 이제는 안다.놓쳤다면 다시 들으면 된다.서운하게 했다면 다시 다가가면 된다.오래 함께 살았다고 해서 사랑이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매일 다시 사랑해야 한다.차창 밖으로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다.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옆자리를 ..
다시 같은 차를 타고 다시 같은 차를 타고 저녁 무렵 나는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차에 올라타자 아내가 물었다.“오늘은 어디 가?”“그냥 좀 드라이브하자.”우리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창밖으로 저녁 빛이 내려앉고 있었다.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전 같으면 내가 먼저 무슨 말을 꺼냈을 것이다.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누구를 만났는지 이야기하고,내일 해야 할 일을 이야기했을 것이다.그런데 그날은 그냥 운전했다.아내도 말이 없었다.이상하게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오래 함께 산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다.나는 운전대를 잡고 앞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옆자리에 앉은 아내를 잠깐 바라보았다.수십 년 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내가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그러나 아직도 내가 배워야 할 것이..
함께 산다는 것 함께 산다는 것 사람은 특별한 순간에만 함께 사는 것이 아니었다.밥을 먹고,차를 마시고,전화를 받고,시장에 가고,병원에 가고,때로는 서로에게 서운해하고,또 다음 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아침을 먹는 것.그것이 함께 산다는 것이었다.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멀리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하지만 가까운 사람은 내일도 만나야 한다.오늘의 말이 내일의 얼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조심해야 했다.더 많이 들어야 했다.더 자주 고맙다고 말해야 했다.그리고 무엇보다,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했다. 조금만 더 내 말을 들어줘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당신..
쌓여있던 마음 쌓여 있던 마음 어느 날은 사소한 일 때문에 말다툼이 시작됐다.아내가 서운하다고 했다.나는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다.“그게 그렇게까지 서운해?”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아내의 서운함은 그 일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그동안 쌓여 있던 작은 마음들이 그 일을 핑계 삼아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나는 침묵했다.아내도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집 안에 시계 소리만 들렸다.째깍.째깍.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그때 나는 알았다.부부싸움은 대개 큰일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작은 무관심이 쌓이고,작은 서운함이 쌓이고,말하지 못한 마음이 쌓이다가어느 날 아주 작은 일 하나를 만나면 넘쳐나는 것이었다. 거실의 시계 소리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아내는 먼저 방으로..
아내의 전화 아내의 전화 며칠 뒤에는 또 다른 일이 있었다.아내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한참을 받더니 한 시간이 지나도 끊지 못했다.전화의 상대는 가까운 지인이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이었다.처음에는 나도 그 사람의 사정을 이해했다.나이가 들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일이 많아진다.자녀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하고, 친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그럴 때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 하나가 얼마나 고마운지 나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반복되는 전화는 아내를 지치게 했다.전화를 끊고 나면 아내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또 무슨 일이야?”내가 물었다.아내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그냥 힘들어.”그 한마디에 나는 더 묻지 않았다.아내의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무엇을 ..
2부. 가까운 사람일수록 어려운 것 2부. 가까운 사람일수록 어려운 것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참 친절했다.전화 한 통을 걸어도 목소리를 낮추고, 무슨 말을 하든 한 번 더 생각했다. 상대의 사정을 묻고, 불편한 일이 있어도 웃으며 넘겼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했다.아내에게는 더 그랬다.하루 종일 함께 있는 사람.아침에 눈을 뜨면 곁에 있고, 밥을 먹을 때도 마주 앉아 있고, 차를 타면 옆자리에 앉는 사람.그래서인지 나는 아내에게 가장 많은 말을 했지만, 가장 조심하지 않고 말을 하기도 했다.어쩌면 가까움이란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편안함과 무심함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운 것. 늦은 저녁 그날도 나는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현관문을 열자 집 안은 조용했다.아내는 부엌에 있었다.식탁 위에는 저녁을 먹은 흔적이..
다시 만나자는 약속 다시 만나자는 약속 2020년이 시작되고 세상은 조금씩 달라졌다.사람들이 만나지 못하기 시작했다.교회에서도 거리를 두었고, 사람들은 전화와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화면 속 얼굴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리는 날도 많아졌다.어떤 날은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셨는데, 테이블 사이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눈에 보였다.나는 그 거리를 바라보다가 생각했다.사람은 가까이 있어야 가까운 것이 아니었다.멀리 있어도 생각하면 가까운 사람이 있었고,곁에 있어도 마음이 멀어진 사람이 있었다.그럴수록 나는 더 자주 전화를 걸었다.“잘 지내세요?”“네. 목사님은요?”“저야 잘 지내지요. 건강은 어떠세요?”“괜찮아요.”짧은 대화였다.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그 사..
함께 먹는다는 것 함께 먹는다는 것 사람을 만나면 밥을 먹게 된다.밥을 먹다 보면 이야기가 나오고,이야기하다 보면 지나간 시간이 나온다.어느 날에는 가족들과 식당에 앉아 대게를 먹었다.누군가가 계산하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오늘은 내가 낼게.”“아니에요. 지난번에 당신이 냈잖아요.”“그럼 커피는 내가 살게.”별것 아닌 말들이 오갔다.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웃었다.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몰랐다.돈을 얼마나 썼는지가 아니라,누가 먼저 계산하려고 했는지,누가 누구의 잔을 채워주었는지,누가 남은 음식을 챙겨주었는지.마음은 그렇게 작은 행동으로 모습을 드러냈다.어느 저녁에는 유준이네 가족이 집에 왔다.아내는 저녁상을 차렸다.나는 고기를 구웠다.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가 났다.아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