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에는 변화가 있다. 어린 시절, 학창시절, 청년시절, 장년, 그리고 노년이다. 각 흐름마다 마음속에는 움직이지 않는 내가 있지만, 세월 따라 나는 변화하고 있다. 내가 변화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나는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나라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생명이 끝나면 존재자체가 없어진다. 자신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그것을 밖으로 알릴 수 있다. 자신의 흐름을 알아야 할 이유이다.
한국교회 영성에도 흐름이 있다. 60-70년대에는 감각적 영성시대였다. 은사중심으로 기도원에서 뜨겁게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80년대엔 감성적 영성 시대였다. 열린 예배를 통하여 뜨겁게 찬양하고 감동을 주며 동기부여를 했다. 90년대는 지성적 영성시대로 변화했다. 제자훈련과 말씀을 사모하며 성경공부를 했다. 21세기엔 인격적 영성시대로 변화했다. 주님을 닮아야 한다고 예수의 영성을 발굴하고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시대를 앞서가는 교회들은 인격적 영성을 위해서 예수 닮기 운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하나님나라를 세우고 영향력을 키우는 교회의 모습으로 한국교회는 사회적 영성, 또는 수도원 영성으로 돌아가 묵상과 경건의 모습을 키우려고 변화하려고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 이렇게 영성의 흐름이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영성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4월 달에 4.16과 4.19를 만난다. 4.19 의거는 우리 사회에 민주화를 일으켰던 뜻 깊은 날로 기억된다. 지난 4.16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이다.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면 시각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픔을 치유해야 할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아픔을 주는 그런 말들이 그들의 마음에 희망을 뺏는 그런 일이 지금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9.11테러의 아픔을 겪은 미국은 그라운드 제로에 WTC 추모관을 세우고, 그곳에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름을 기록하여 사랑의 메시지를 받게 함으로 아픔을 치유하고, 미국사회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합쳤다. 모든 미국시민들이 테러의 아픔을 나누고 치유될 수 있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발생과 구조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가 다시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단합을 해야 한다.
만화가 박제동 씨가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사진 속의 희생자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눈동자를 보아야 하고, 코와 입, 그리고 귀를 보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박재동 씨는 그림을 유족들에게 주고, 그 그림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박제동 씨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은 유족들의 가족으로만 생각하고 위로 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며 그마저 잊혀지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 후론 희생자들이 바로 내 자식이며 가족이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그린 희생자들의 그림을 통해 학생들이 다시 자신의 아이들로 가족으로 태어난 느낌이 생겼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런 아픔을 가진 자들이 치유 받는 공동체이다. 예수님도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겪으시면서 죽으셨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고통, 십자가의 보혈로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요 교회들이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의 질문이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때에 우리에게도 연약함이 있지만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권능도 함께 체험하고 하나님의 기적들을 경험하게 될 줄 믿는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는 하나님의 고통이다. 교회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지난 이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지금 예수님은 동일하게 세월호 참사를 무엇이라고 하느냐? 라고 질문을 하신다.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의 삶, 말씀, 행위, 그리고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실제로 우리 삶에 경험할 때에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자. 예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자. 예수의 삶을 음미하고, 그 분과의 관계를 살찌우고, 예수의 질문에 답하려고 애를 쓰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