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도원교회의 절친한 장로님 한 분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불의의 사고로 목뼈를 다쳐서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들었었다. 김 장로님이 사고를 당한 이후에 길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가 당연히 걸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장로님 부인인 정 권사님 손을 붙잡고 함께 기도를 했다. “장로님의 불의의 사고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장로님이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했었다.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을 할 때에 정 권사님이 “목사님께서 장로님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셨는데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라고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허망하고 장로님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발인예배를 드리면서 장로님이 육신적으로는 일어서지 않으셨지만, 그 분의 믿음의 삶이 다시 일어선 것을 믿게 되었다. 도원교회에 1956년에 교사로 세워지고, 1981년도에 장로임직을 받고 교회와 함께 한 장로님의 신앙의 삶이 영상으로 비쳐지면서 장로님께서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시는 것을 믿게 되었다. 한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도는 당연히 예배자로 서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신 분이라는 것도 선포되었다. 새벽기도, 수, 금요기도, 모든 공 예배는 당연히 드리는 장로님이었기 때문에 담임목사는 장로님을 목사보다 더 교회를 사랑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 분의 신년기도의 육성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울려 졌다. 평소에 인간의 육신과 마음의 연약함 때문에 주님 뜻대로 살지 못했음을 회개하는 기도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만나며 다짐하는 믿음의 결단들이 삶과 죽음을 이어준 살아있는 생명의 기도처럼 들렸다. 마치 이 세상의 고단한 삶을 회개하며, 이제 새해 같은 천국으로 가는 희망의 기도처럼 들렸다. 가족들을 향한 녹음된 음성으로 통하여 유족들과 교우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를 주었다.
고 김 장로는 선배 장로들을 각별하게 섬겼다고 한다. 그의 삶에서 선배들을 섬기는 결단이 있었던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안 장로님을 만났다. 안 장로님과 고 김 장로님은 마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긴 분들이다. 우리 교회에도 몇 번 오셔서 함께 예배에 참석을 하며 기도해 주신 분들이다. 고 김 장로님은 우리 교회 올 때에도 안 장로님을 차량으로 모시고 함께 오곤 했었다. 안 장로님은 자신을 깍듯이 섬겨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었다. 안 장로님은 고 김 장로가 서지방회 때에는 까다롭게 발언을 잘 하면서도, 자신에겐 한 번도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자신을 형님처럼 섬겼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에서 말 대신 자신의 배에다 “고맙습니다.” 라고 글씨를 써서 자신과 동행이 진실이었음을 전했다고 했다. 80이 넘으신 안 장로님은 동생과 같은 후배의 죽음에 대하여 충격이 크다고 말씀하시면 더욱 수척하신 모습이 되셨다. 나는 “앞으로 마치 하늘이 다르게 보일 것이라” 고 말씀드리면서, “그렇지만 두 분의 이야기는 도원교회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라며 안 장로님을 위로 해드렸다.
이제 5월이다. 신록의 계절이라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내 삶을 돌아보고 휴식, 친교, 재교육을 통하여 바른 신앙의 삶을 살기로 결단해 보자. 나의 멘토가 오늘 결단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힘든 편을 결단해 보자. 타인을 위한 결단, 손해 보는 편으로 결단, 혼자보다는 동행하기로 결단, 힘든 일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직면하기로 결단하라’ 고 주문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을 했고,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기로 결단했고, 섬김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섬기려고 결단하심으로 우리 주가 되셨다. 인성, 영성, 지성을 세우는 길은 내 힘이 아니라 결단을 통해서 세워지고, 말씀 안에서 기록될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믿음의 삶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록된다는 것을 믿는다. 이렇게 우리 인생에서 살아내는 모든 믿음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