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산다는 것
사람은 특별한 순간에만 함께 사는 것이 아니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전화를 받고,
시장에 가고,
병원에 가고,
때로는 서로에게 서운해하고,
또 다음 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아침을 먹는 것.
그것이 함께 산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가까운 사람은 내일도 만나야 한다.
오늘의 말이 내일의 얼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조심해야 했다.
더 많이 들어야 했다.
더 자주 고맙다고 말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했다.
조금만 더 내 말을 들어줘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아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냥 지금처럼 살되, 조금만 더 내 말을 들어줘.”
나는 웃었다.
“그게 제일 어렵네.”
아내도 웃었다.
“그러니까 해보라고.”
그 말을 듣고 나도 웃었다.
참 이상했다.
평생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 한마디를 듣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자기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자기 마음을 설명할 시간을 주는 것.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아내가 바라는 전부였는지도 몰랐다.
듣는 연습
그 후로 나는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이야기하면 바로 해결책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먼저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입에서는 자꾸 해결책이 먼저 나오려고 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잖아.”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면 되지.”
그러다가 멈췄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지금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책일까.
아니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일까.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갔다.
그리고 나 역시 아내에게 내 마음을 말하려고 했다.
서로 오래 살았다고 해서 서로를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살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상대가 변해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예전의 모습으로만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내를 알아가는 일은 또 다른 일이었다.
다시 만나는 사람
나는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어려운 이유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너무 익숙해서였다.
늘 곁에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내 마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쉽게 서운해하고,
가장 쉽게 화를 내고,
가장 쉽게 무심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마지막까지 함께 걷고 싶은 사람도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니 가까운 사람은 다시 만나야 했다.
같은 사람을 다시 보고,
같은 목소리를 다시 듣고,
어제 알던 사람을 오늘의 사람으로 다시 알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