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에 새로 입사한 마 간사가 지난 주 수요일에 자전거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그것도 시설 아동이 학교 정문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정면을 보지 않고 내달리다 부딪친 사고였다. 그 시간에 마 간사는 시설 아동을 귀가조치를 하기 위해서 정문 앞에서 시설 아동 보호자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 간사는 잠시 정신을 잃었고, 아동은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팔뚝이 스친 정도의 찰과상을 입었다. 병원에 이송하여 엑스레이를 찍고, 치료를 받았으나, 원장은 일주일은 기다려봐야 한다고 했다. 마 간사는 가슴과 엉덩이에 통증이 심해서 며칠 쉬기로 했다. 월요일엔 행홈 간사가 없이 시설 운영을 하다 보니 하루가 고된 노동 같았다. 요즘은 한 가정에서 아이 한명, 두 명도 키우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시설에 평균 22명을 수용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란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에게도 긴장감을 주어야지 자율적으로 내버려두면 시설 공간이 시장처럼 시끄럽고, 통제 불능까지 이르게 된다.
하루를 보내고 월요일 오후였다. 강 목사가 “내일도 마 간사가 오지 못하는데, 서울 문 권사님 약속은 다음 기회에 만나기로 해야 겠지?” 말했다. 그러자 나는 “힘들지만, 문 권사님을 만나면 힐링도 되니까, 지금 출발하면 어때?” 라고 말했다. 강 목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대답을 하여 하루 종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늦은 오후에 서울로 가기로 했다. 경인고속도로는 퇴근시간이라 교통체증이 있어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우리는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통하여 사당 쪽으로 운행을 했다.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고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이 되어 차 안에서 “오늘, 저녁 서울 가기로 한 것 정말 잘 했다.” 라고 피차 위로를 하였다.
서울에는 50분 정도 걸려서 도착을 하였다. 저녁식사는 낙지 불고기 뚝배기를 먹었다. 낙지불고기 뚝배기는 낙지 한 마리를 넣고, 불고기와 면을 함께 넣고 끓인 메뉴이다. 맛도 달달하면서 낙지 한 마리를 먹으니까 배도 부르고 영양식이 되었다. 하루 종일 피곤하였는데, 보양식을 먹으니까 배도 든든하고 피로감이 풀리는 것 같았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하였다. 그리스 부도위기 사태, 우리나라 메르스 문제 등 문제점 등을 짚어가는 등 대화 내용은 깊이가 있었다.
문 권사님은 은행에 간 이야기를 하는 데, 은행지점장이 고객이 있는 매장에 나와서 껌을 주더란다. 지점장은 고객이 기다리면서 지루할까봐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았지만, 자신은 그 모양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고객들은 빠른 시간 안에 은행 업무를 처리해주는 것을 바라는데, 지점장이 고객들에게 껌을 주는 모습을 보니, 지점장이 일선 업무를 할 줄 모르는 것 같아서 책임자의 권위가 떨어져 보였다고 했다. 껌을 줄 것이 아니라, 창구에서 간단한 일이라도 고객의 업무를 처리하는 지점장의 모습이었다면 훨씬 보기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 그 지점장은 본부에서 지시만 하다가 일선으로 배치된 사람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권위는 어떻게 해야 얻게 되는 것일까? 자리가 권위를 나타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물론 소유로 권위를 내세우는 것도 앞으로는 지나갈 것이다. 세상은 변화되어 정보와 소유에 대하여도 시민들은 평등해지고 있다. 근대화 산업혁명의 출발을 알린 증기기관차와 기계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고 보았지만, 소수의 시민들은 ‘시민 평등의 시대’를 미리 내다 보았다. 지금의 시대는 ‘권위 평등의 시대’이다.
권위는 어떻게 평등해질까?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전래동화 놀이에서 말놀이를 하였다. 아기가 해녀인 엄마를 찾으러 간다. 가다가 하얀 토끼를 만났다. “토끼는 날라. 나르는 것은 까치, 까치는 까매, 까만 것은 돌, 돌은 높아, 높은 것은 하늘, 하늘은 파래, 파란 것은 바다, 바다는 깊어, 깊은 것은? 엄마 품!” 아기는 해녀인 엄마 품을 꼭 안긴다. 산처럼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바다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의 모습이 오늘날 권위의 자리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흡수하지만 다시 인간에게 깊음이라는 권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을 섬긴다는 자리에는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정치인들, 공직자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국민들이 권위를 부여해주며 섬김의 리더십으로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기를 주문한다. 높은 것은 하늘이지만, 그 하늘이 바다처럼 파랗기 때문에 낮은 깊음이라는 권위가 요구된다. 성경에는 종(servant)이라는 표현이 특이하다. 바울은 나는 예수의 종이라고 말했다. 예수의 낮은 자리는 그의 사역의 자리가 전 세계의 가장 낮은 지형이라는 점에도 상징성이 있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에서 –200미터이고, 사해도 -400미터나 낮은 곳에 있다고 한다. 예수는 지형적인 낮은 위치에서 사역을 하면서 십자가의 삶을 통해 인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 보였다. 하루 종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친 종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인 저녁시간에 어느 권사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권위에 대해 묵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