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비나무의 노래는 사서 동기생 김정미 사서로부터 뜻밖의 선물로 받은 책이다. 년 말 바쁜 시간이라 하루 정도는 책상 위에 두었다가 새벽에 꺼내 읽게 되었다. 책 저자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다. 그가 머리말에서 한 말은 시간에 대한 말이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면 하루하루가 중요하다는 그의 말이 새겨지는 요즘이다. 하루하루가 너무도 중요하다. 2015년 세밑을 보내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년말년시를 보내며 지난 시간과 새로 오는 시간에 대한 다름을 기대하였었다. 지난 한해를 아쉽지만 떠나보내며 새해에 희망을 갖고 출발했다. 금년은 새로운 통찰력을 본다. 모든 시간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 마틴 슐레스케는 모든 시간을 카이로스로 만난다. 그가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오스트리아 화가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에 쓰여 있는 글을 통해서이다. 우리에게는 이제 생명이 관한 비유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 내적 깨달음을 얻기는커녕, 더는 우리 주변이나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이기를 그만 두었다. 우리는 그릇되게 살고 있다. 우리는 죽었다. 그저 오래 전에 썩어 버린 인식을 갉아먹고 있는 따름이다. 그 후부터 저자 마틴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깨어있다 보면 기도가 된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일과 믿음은 하나라고 한다. 저자는 바이올린을 만들면서 믿음의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저자가 바이올린을 만들며 사용하는 나무는 가문비나무이다.
고지대에서 2-3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서히 자란 가문비나무는 천천히 자라 아래쪽 가지들을 스스로 떨군다. 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쪽 가지들은 빛을 향해 위로 뻗어 오르고, 빛이 닿지 않는 아래 쪽 가지들은 떨어 져 나간다.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은 가문비나무가 생존하는 데는 고난이지만, 바로 이런 목재가 울림의 소명이라는 축복을 받는다고 했다. 가문비나무는 어둠 속에 놓인 마르고 죽은 가지를 스스로 떨군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은 것을 떨쳐낸 자리에서 울림의 진수가 생겨난다. 나이테가 촘촘하고, 잔가지가 없고, 섬유가 긴 나무, 그것은 언젠가 바이올린이 되어 아름답게 울릴 질 좋은 목재이다.
공명이 악기의 음색을 만든다. 공명이 없는 악기는 개성도 없다. 다양한 공명이 모여 바이올린의 공명 이력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음색이 결정된다. 자기를 존중하는 일을 게을리 말자. 모든 악기가 자기만의 공명을 지니듯이 모든 사람에게도 공명이 있다. 우리는 자기를 존중해야 한다. 각자는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성숙한 삶에서는 은혜와 일이 언제나 공명을 이룬다. 은혜와 일 사이의 긴장, 삶의 힘과 삶의 내용 사이의 긴장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다. 하느님은 주는 자인 동시에 요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장기간 강한 바람에 시달리거나, 기슭에서 자랐거나, 눈 더미 등에 눌려 한쪽에 무거운 하중을 받으면 나무 즐기 속에 이상재가 형성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일이 어긋났고, 오랫동안 부담에 눌려 있었거나, 영혼이 편협해지고 상처가 났다. 나무처럼 우리도 고유의 음을 갖게 되었다. 바이올린 제작자는 각 나무에 형성된 결을 존중하여 작품을 만들고자 애쓴다.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가 지닌 결의 방향과 지난날의 어려운 역사를 헤아려 좋은 울림을 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아내신다. 사람들을 저마다 유일하고 독특한 예술작품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을 보고 듣는 우리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음악이 작곡가의 생각을 들려주듯, 우리 행동은 우리 삶의 의미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매일 연습과 배움에 헌신해야 한다. 독수리는 둥지를 어지럽히고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날개를 펴 새끼를 받는다. 새끼에게 연습을 시키려고 둥지를 부수고 새끼들 위에서 날아다니는 독수리처럼 하느님은 우리에게 비행 연습을 시킨다. 날개를 펼치기 위해, 우리 소명을 알기 위해, 우리는 방해 받아야 한다. 우리가 안전한 둥지에서 밀려나는 것은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연습이 곧 깨달음의 길이다. 그 연습에서 하느님은 어미 독수리처럼 우리는 두 팔에 안아준다.
전진 음악가인 라인홀트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돕는다. 한 지인이 그에게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의 형편은 너무 나빠요. 아무리 도와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예요. 뜨거운 돌에 찬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밖에 안된다니까요.” 라인홀트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의 어려운 형편을 모두 더해서 생각하면 안돼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어려움은 그 자체로 온전한 어려움입니다. 한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이렇게 어마어마한 어려움이 있으니 작은 도움은 소용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안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그 자체로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는다. 우리는 서로 하느님의 악기가 되어 주어야 한고 각자의 소명에 맞추어 음을 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 겸손인줄 아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겸손은 자기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자기를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중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나무와 잎은 막 돋아날 때는 연하다. 그러나 죽을 때는 바싹 마르고 거칠다. 하느님의 영은 우리 마음에 연함 마음을 창조한다. 그런 마음은 으ㅜ리가 싱그럽고 용기있게 그를 믿도록 이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만이 다르게 살 수 있다. 사랑받는 사람만이 자기 본연의 모습대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