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콘서트 장자>. (박기복 지음, 행복한 나무. 2015.서울)을 소개한다. 10대들 고민도 해결하고 장차철학도 쉽게 풀어쓴 책이다.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만물은 하나다. 비움으로 채운다. 하지 않음으로 이룬다. 3부 안의 내용이 인생의 네비게이션 같다.
만물은 하나다. 미래와 친구, 걱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단 고민은 접어두라고 하며 붕새이야기를 한다. 붕새가 날개로 바닷물을 치는 것이 3천리. 바람을 타고 허공으로 구만리까지 날아오르면 쉬지 않고 6개월을 날아간다고 한다. 명령이란 나무는 500년을 봄으로 삼고, 500년을 가을로 삼는다. 대춘이란 나무는 8천년을 봄으로 삼고, 8천년을 가을로 삼는다. 100년 사는 인간은 천년 세월, 만년의 시간이 어떤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막연히 짐작만 한다. 허유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뱁새는 넓은 숲 속에 집을 짓고 살지만 한 개의 나뭇가지만 필요하고, 두더지도 황하강의 물을 마시지만 자기 배만 차면 그걸로 만족한다. 천하가 주어져도 저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 이름을 얻기 위해 임금이 되고 싶지 않다.” 장자가 말하는 큰 사람은 逍遙遊(소요유)하는 사람이다. 장자는 조건을 이야기하지 않고 큰마음을 이야기한다. 왕과 귀족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천민인 장인, 백정, 장애인 등을 위대하고 큰 인물로 그렸다. 우사라는 이가 죄를 받아 발을 잃었다. 친구가 “어찌된 일인가?” 놀랍고 안타깝다고 말했지만 우사는 “놀라지 말게. 내가 벌을 받아 발 하나를 잃었으나 그건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하늘이 내게 한 일이네. 하늘이 나에게 한 쪽 발만 지닌 채 태어나게 한 셈이네. 하늘의 뜻이니 그저 받아들이면 그만이네.” 삶과 죽음도 순리대로 살라고 한다.
비움으로 채운다 편. 지적과 비난에 대해, 옳고 그름, 참다운 선생님에 관한 내용이다. 시상기가 노자를 찾아 왔다. 그는 보자마자 노자에게 심한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이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듣고 왔소. 그런데 실제로 보니 정말 실망이요. 당신 집을 보니 음식이 넘쳐나는 데도 누이동생도 돌보지 않으니 이게 어떻게 인간이 할 짓이오?” 심한 말을 들었지만 노자는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 전혀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시상기가 다시 노자를 찾아 왔다. “죄송합니다. 어제는 제가 잘못 알고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찌 그렇게 심한 말을 듣고도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이름이 났으면 이러저러 해야 한다고 믿는지 모르겠지만 난 주위의 평가에 전혀 신경 쓰지 않소. 어제 당신이 나를 소라고 했다면 소라고 인정하고, 말이라고 하면 말이라고 인정했을 것이요. 남이 그리 말하는 데는 다 까닭이 있는 법이지요. 남의 말이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따져 봐야 다툼만 생길 뿐이요. 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맞서지 않소, 굳이 그래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소. 난 그저 내 삶을 살 뿐이요.” 비난이 두려운 이유는 비난을 받으면 자기 인격이 무어진다고 믿기 때문. 내가 나를 믿고 떳떳한데 무엇이 두려운가? 자기 삶에 만족하고 떳떳하면 남에게 신경 쓰는 일이 줄어든다. 가장 중요한 평가자는 자기 자신이다. 타인은 그저 타인이다.
하지 않음으로 이룬다. 노자에게 배움을 얻은 경상초는 외루산에 살았다. 경상초 주변에는 똑똑한 하인이 없고 멍청하고 못난 자들뿐이었다. 경상초가 외루산에 자리 잡은 지 3년이 지날 때 큰 풍년이 들었다. 외루산 근처 사람들은 풍년이 들고 살기 좋아지자 모두들 경상초를 대단한 인물로 존경했다. 이런 사실을 안 경상초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스승이 존경받아서 기분이 좋았던 제자들은 경상초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이유를 물었다.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으시는데 왜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스승님때문에 잘 살게 되었다고 기뻐하는데 왜 함께 기뻐하시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상초가 제자들에게 설명했다. “내가 보기에 너희들이 이상하구나. 내가 도대체 무얼 했다는 말이냐. 봄이면 싹이 트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자연이 이룬 일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을 두고 누구 때문이라고 공을 내세우다니 말이 안된다. 나는 내가 이루지도 않은 공을 이루었다면서 칭송을 받으니 언짢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나를 내세우는 사람이 되었고 이는 스승인 노자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우언은 열에 아홉, 중언은 열에 일곱, 치언은 모든 글에 자유롭게 사용한다. 우언은 다른 사물을 활용해 도를 전한다. 세상 사람들은 나와 다른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직접 말하기보다 다른 사물, 이야기를 빗대서 표현하는 게 더 낫다. 그것이 우언이다. 중언은 옛 사람 말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옛사람의 말은 권위가 있다. 권위 있는 말을 쓰면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인다. 치언은 도를 따르는 말이다.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으며, 만물제동의 관점에서 말한다. 책을 많이 읽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많이 나누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