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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한강 연작 소설을 읽다. 이 책이 맨부커 인터네셔널상 수상했기 때문인가. 서점가에서는 재고가 없을 정도로 구입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인에게 기증을 받아 작은도서관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의 3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이미 2004년부터 2005년에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학판 등에 기고되었던 글이다. 작가 집안이 문학가족이고, 어릴 적부터 책 속에 파묻혀 살다시피 하였고, 어둠을 응시하며 볼 정도로 사물과의 소통에 깊은 애착을 지녔다고 해서 문장 하나하나를 주목하며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는 것과, 의식세계의 경계와 뒷면을 열어보여주며 일종의 책임의식을 간직하게 한다.

 

채식주의자. 평범한 부부의 관찰이다. 남자는 아내를 만난 이유를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여 선택을 했다. 남자도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여자의 무난한 성격이 편안했다고 한다. 오직 한 가지 아내에게 남다르다고 느껴지는 점은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부엌의 냉장고 앞에 서서 꿈 이야기를 한다. ‘어두운 숲. 혼자 길을 잃고 있었고, 고깃덩어리를 먹은 자신의 모습이 이상한 느낌을.’ 그 후 아내가 차린 저녁 식탁은 상추 잎과 된장, 쇠고기도 조갯살도 넣지 않은 말간 미역국, 김치가 전부였다. 봄이 올 때까지 아내는 변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풀만 먹게 되긴 했지만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그 녀는 하루하루 말라갔다. 새벽 5시 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한 시간쯤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짧은 신음을 뱉으며 깨어나곤 했다. 어느 때처럼 그 녀는 말 수가 적었고 집 안을 잘 정돈했다. 주말이면 나물 두어 가지를 무쳤고, 고기 대신 버섯을 넣어 잡채를 만들기도 했다. 채식이 유행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다만 그녀가 잠을 이루지 못한 다는 것, 유난히 얼굴이 멍하고 무엇인가에 짓눌린 것처럼 보이는 아침에 내가 까닭을 물으면 꿈을 꿨어라고 대답한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들어가지 못한, 알 길이 없는, 알고 싶지 않은 꿈과 고통 속에서 그녀는 계속 야위어 갔다. 남자의 직장의 부부모임에서 아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그 녀는 채식주의자로 주목을 받고, 이 이유에 대해서 건강, 종교적인 것 등 이유를 묻지만 아내는 그들에게 꿈을 꿨어요.” 라고 대답을 한다. 가족모임에서 장모와 장인이 아내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권했지만 아내는 완강히 거절한다. 성깔이 대단한 장인이 아내 빰을 휘갈기고, 억지로 아내에게 고기를 먹이게 하자 아내는 칼을 치켜들고 손목을 그었다.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것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있어.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몽고반점. 또 다른 부부. 이들은 채식주의자에서 나오는 평범한 부부의 처형부부이다. 그것은 그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의 아내가 그 일요일 오후 그에게 아들을 목욕시켜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아내가 아들에게 팬티를 입히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몽고반점이 제법 크게 남아있군. 대체 언제나 없어지는 거지? 하고 묻지 않았다면, 아내가 글쎄, 영혜는 뭐, 스무 살까지 남아 있었는 걸 하고 뜻 없이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오랫동안 해답을 찾아왔다. 어떻게 이 이미지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것인가를. 그러나 이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이것만큼 강렬하고 매혹적인 어떤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전시와 영화, 공연 따위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오로지 이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떻게 이 이미지를 실현시킬 수 있을지 그는 백일몽처럼 궁리하곤 했다. 그 이미지만 아니었다면 이 모든 조바심, 불편함, 불안, 고통스러운 의심과 지기검열을 겪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많은 것들이 그의 안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이제는 그녀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 곡식과 나물과 날 야채를 먹는다는 것마저 그 푸른 꽃잎 같은 반점의 이미지와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어울리게 느껴졌으며, 그녀의 동맥에서 넘쳐 나온 피가 그의 흰 셔츠를 흠뻑 적시고 꾸덕꾸덕 짙은 팥죽색으로 굳게 했다는 것은 그의 운명에 대한 해독할 수 없는, 충격적인 암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이 창조해낸 이미지의 끝을 알고 싶다는 욕망이 시간의 허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무불꽃. 언닌, 알고 있었어? .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모두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까르륵 영혜가 웃었다.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 없어. 물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자꾸만 먹으라고 해.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여. 지난번에 먹구선 토했다구. 어제 먹자마자 잠자는 주사를 놨어. 아무도 날 이해 못해. 의사도, 간호사도, 다 똑같아. 약만 주고, 주사를 찌르는 거지. 네가 죽을까봐 그러잖아!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옳았을까.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온 힘을 다해 화라도 냈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