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의 칼날. 찰스 길리스피 지음. 이필렬 역. 새물결(2005. 서울)
이 책의 이야기는 갈릴레오와 낙체의 법칙에서 시작한다.
지식은 활동을 통해 그것의 목적을 찾아내며 활동은 지속 속에서 그 근거를 찾아낸다는 것,
그리고 어떤 문제가 풀릴 수 있다면 그것은 풀려야 하며 어떤 일이 실행될 수 있다면 그것은 실행되어야 한다는 본능이다.
갈릴레오에 대한 이 책의 이해방식은 그의 업적에서 실험의 측면을 강조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책에서 시사점이 가장 많은 부분은 과학과 계몽사상의 관계를 다룬 5장이다.
문화에서 과학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합리주의적 입장과 이에 대한 낭만주의적 방식의 반동 사이의 긴장은 다시 반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문화적 급진주의자들은 과학을 무지와 미신으로부터 해방으로 보는 대신 인간성에 대한 폭력이요 서구 문명의 질병이라고 여기는 경향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경향을 통해 낭만주의적인 반응의 심리적 실체가 확인되었다.
과학은 자연법칙이 가진 정치적인 함의의 토대도 아니며, 전문과학자 집단의 정치적 행동을 위한 토대도 아니다. 과학자들의 사적인 견해가 어떠하든 간에, 통상적으로 그들의 공적인 역할은 과학을 위하여 국가의 권위와 자원을 동원하는 한편으로 정부 당국에 권력을 부여해주는 데 있었다.
근대사회에서 과학자들과 국가는 하나의 당파에 속해 있다기보다 파트너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화학혁명의 배경을 실용화학과 약제제조에서 찾는 것은 헨리 굴락을 비롯한 사람들의 연구주제였다.
프레드릭 홈즈는 라부아지에가 죽기 몇 년 전부터 매달린 호흡 연구에 관한 책을 출간하였다.
현대 진화생물학을 주도한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생물학 사상의 성장에서 생물학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엔리코 벨로네의 종이에 씌어진 세계는 2차 과학 혁명의 틀 안에서 물리학의 핵심주제들을 철학적으로 그리고 퀴즈 풀이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과학사학자들의 관심사는 과학의 사상과 개념들을 다루는 내적 과학사로부터 과학을 그 자신의 제도 속에서, 그리고 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다루는 외적 과학사로 많이 옮겨갔다.
1960년대 후반 이래 역사학계 전체에 걸쳐 사회적 의식이 고조되면서 과학의 사회사가 힘을 얻게 되었으며,과학이 국내문제와 국제 관계 양편 모두에서 하나의 힘으로 여겨지게 되면서 과학의 정치사 역시 비슷하게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과학의 역할은 전문적인 관심사와 공적인 관심사의 교차점 위에서 또는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의 교차점 위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저자는 과학이 전지전능하지 않다할지라도 무지, 미신, 독단, 약탈에 맞서는 유력한 무기라고 한다.
핵분열의 발견이 제 아무리 양날을 가진 칼로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산업공해의 물결 속에서 생명 보존을 외치는 것이 제 아무리 답답하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인간의 정신을 존중한다면 우리는 지식이 위험할지라도 무지는 더욱 위험한 것이며, 과학에 수반된 악을 감소시키는 것은 과학의 후퇴나 퇴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보다 잘 이끌어가도록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과학은 역사적 과정 속에서 개인의 인성과 사회적 환경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나의 과학이 만들어질 때는 그것의 창조자의 낙인- 라부아지에의 명석함, 맥스웰의 재기 넘치는 상상력, 갈릴레오의 당당한 연극적 감각 등-을 받게 되지만, 최초의 정식화에 포함된 개인적인 요소는 일단 이것이 창조자를 떠난 뒤에는 일상적인 과학 활동에 아무런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과학의 개인적 속성은 매우 관심을 자극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과학적 관심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심이다.
과학적 발견은 검증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작동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