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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느낌있는 유쾌한 대화법

     일평생 사랑하며 살아온 노부부이야기이다. 노부부는 다정히 앉아 빵을 먹고 있었다. 이전과 같이 빵의 중간부분은 남편의 몫으로, 빵의 가장자리는 아내의 몫으로 나누었다. 아내는 속마음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 “여보, 저는 사실 빵의 중간 부분을 먹고 싶은 데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지금까지 한 번도 먹지 못했어요.” 그러자 남편은 깜짝 놀랐다. 사실 남편은 지금까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빵의 가장자리를 아내에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위한 말과 행동이라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때에 오해가 생긴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사랑이 제대로 표현될 때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사랑표현을 배우려면 아담이 하와에게 한말, 당신은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이 모델이 될 수 있다. CBS 라디오 행복의 나라로아침 프로에 한 대수 씨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좋아요, 최고에요.” 라고 말한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잘 안된다. 집에 형광등이 깜빡 깜빡해서 철물점에서 형광등을 사 왔는데, 또 사이즈가 맞지 않고, 또 깜빡 거렸다. 한번은 사이즈 때문에 또 한번은 깜빡 거려서 철물점을 두 번 갔다 왔다. 아내는 형광등 하나 가는데 몇 번을 다니냐고 핀잔을 준다. 나는 그게 아니고.” 했다가 바로 면박을 당했다. 속으로는 좀 좋게 말하지 왜 저렇게 말하나서운해진다. 아내는 한 술 더 뜬다. ‘설교할 때는 아담처럼 말하라고 해 놓고는 자기는 이유를 갖다 댄다.’는 것이다. 내 대답이 차라리 그러게 말이야.” 라고 했으면 되었는데 잘못 반응을 해 버렸다. 아내는 설교 뭐 하러 하느냐 라고 말한다. 나는 설교가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판단하는 아내 때문보다 설교를 했으니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만 말한다면 설교 영역이 좁아진다. 실천은 고통이다. 예수께서 주님의 사랑을 입증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증명할 수 있는 사랑이 위대한 사랑일 것이다.

     요즘 두 날개 목회가 인기이다. 두 날개는 대예배와 소그룹 중심의 목회란다. 교회마다 예배와 소그룹 예배에 관심을 갖고 프로그램 운영으로 바쁘다. 목컨 김 소장은 두 날개로 나는 것도 좋지만, 두 날개를 움직이려면 몸통이 건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몸통에 해당되는 것이 설교라고 말한다. 건강한 몸통인 설교를 하려면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 메시지는 행하는 설교가 될 것이다. 예수의 목회는 어떠했는가? 사도행전 11-2절을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예수는 행하시며 가르치셨다. 나는 행하지 못하고 가르치기만 했다. 예수는 성령으로 명하셨다. 나는 성령님으로 명하지 못하고, 성도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주길 바랬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까지 일하였다. 나는 언제까지 일하는가를 헤아린다. 예수는 확실한 많은 증거로 나타내셨다. 오늘도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의 설교가 건강한 몸통이 되기를 희망한다.

     ‘느낌 있는 유쾌한 대화법이라는 책을 읽었다. 지은이 마쓰모토 유끼오는 책머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똑똑하고 능력이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텐 데 하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희망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기술, 지식이 남들보다 뛰어나도 다른 사람들의 협력이 없으면 삶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느낌이 좋은 사람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고, 변화된 분위기는 회사의 생산성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우리 몸에는 자정능력이 있다고 한다. 우리 몸속에 독성이 들어오면 그것을 밖으로 내 보내려고 몸이 반응을 한다. 그 반응방법에는 구토와 설사도 포함된다. 우리 몸 안에 독성이 들어올 때에 그것을 몸 밖으로 내버리지 않고 받아들여버리면 몸은 망가진다. 호흡도 마찬가지. 숨을 쉬고 내뱉는 것이다. 그래야 몸 안에 필요한 산소가 공급되고 나쁜 이산화탄소는 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도 낡은 생활방식과 생명이 없는 삶은 버려야 한다. 새 삶을 살기 위해서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생사를 가른 수술을 받은 사람도 이제부터는 식습관을 바꾸고, 금연, 금주, 그리고 운동을 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 기업들은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어렵다. 비록 소수이지만 변화를 하는 사람들은 늘 그 변화를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다. 변화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생각만이 아니라, 감정에 영향을 주며 실천하는 것이다. 변화할 것인가? 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