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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두가 평등한 봄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들이 일기예보를 한다. 미스 코리아 수준의 여성들을 기준으로 아나운서를 뽑는 것 같다. 메스컴 담당자들은 시청률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아나운서들이 옷을 협찬 받는지는 모르지만, 화려한 옷을 입은 모습은 모델수준이다. 일기 예보를 듣는 것이 아니라 아나운서의 옷과 몸매를 보다보면 오늘 일기 예보가 무엇인지 모를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모를 생각하다 보니까 성형과 다이어트가 지금 시대의 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이 마른 몸매를 선호하다보면 국민건강에 적신호가 생긴다. 외국에서는 일기예보를 나이든 평범한 몸매의 아나운서들이 진행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너무 마른 모델은 쓰지 않기로 법제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관심을 가질 일이다.

     인류의 미의 개념도 마른 체형인 것만은 아니었다. 미라는 글자도 한문으론 ()이다. 그 뜻을 살펴보면 양이 크다라는 의미이다. 양이 크다는 의미는 먹을 것이 크다.’ 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고대시대는 잘 먹고 건강한 것이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인생을 잘 사는 것이 아름다움이지, 경쟁을 통해 등수를 매기고, 자기 고통으로 기쁨을 잃어버리며 다이어트하고 뼈를 깎고 하는 성형의 길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 보도의 매스미디어에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하여 본질보다는 국민성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웃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뉴스보다는 끔찍한 뉴스들, 즉 교통사고, 화재, 안전사고, 다른 사람들의 비리들이 특종이 되는 세상이다. 이 시대에 순기능을 할 수 있는 매체들이 오히려 역기능 쪽으로 가는 것은 순위경쟁에서 비롯되는 이유가 많다.

     사람들은 경주를 좋아한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를 환호한다. 모든 시합이 경주를 기본으로 하여 진행되고 순위를 매기려 한다. 인간의 수명이 100, 1세기가 한계이다. 지구상에 인간이 생긴 날 수는 3백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한다. 그 긴 세월동안에 인간 한 사람의 존재는 너무도 짧고 유약하다. 그 인간이 경주를 한다면 신께서는 어떤 눈으로 보실까? 세계사를 연구한 누군가는 오랜 세월동안에 더 멀리, 더 빨리, 더 높이 달렸던 종족은 시대를 따라 바뀌었다고 한다. 고대시대에 서양에서는 인류의 중심이 이집트, 그리스,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로 바뀌었다. 그 당시의 주변 종족들은 미개하거나 중심이 되는 나라의 시민이 되려고 切齒腐心(절치부심)했었다. 동양은 중국이 한, , , , , , 청 등 중심이 이동되었다. 중세시대에 세계중심은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헤게모니를 다투었고, 그 중심을 지각변동하려고 하는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있었다. 지금 세계 중심은 아직까지 미국이고, 미국으로 입국하는 세계 각국의 종족들은 미국시민권을 얻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 또 다시 세계중심이 다른 곳으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수명이 1세기에 머문다면 한때 세계의 중심이 되려고 경주하는 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만수동엔 벚꽃이 만발했다. 검은 나뭇가지에 핀 흰 벚꽃은 마치 등불을 킨 듯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 창가 은행나무엔 파란 잎들이 손톱만큼이나 작게 자랐다. 흰 목련이 창가를 기웃하며 방 안을 들여 보는 듯하다. 산수유나무가 노란 옷을 입은 듯 화사해 보인다. 각양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이 살아있었구나 반갑다. 봄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처럼 반가운 일들이다. 낮은 곳에 핀 풀들이 이슬을 머금은 것이 보석처럼 반짝여 보인다. 바야흐르 봄이 출발한다. 마치 아침 해가 동쪽 하늘 공간을 달려 하루 종일을 힘차게 달려가듯이 봄이 출발한다. 붉은 해는 저녁때가 되면 아름다운 황혼노을을 만들고 인생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봄도 해처럼 그렇게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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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높이 솟은 나무들만의 세상은 아니다. 아직 가지에 잎사귀가 무성하지 않기 때문에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 기운으로 낮은 곳에서는 예쁜 풀들이 자라고, 낮은 꽃들도 피고 있다. 낮은 꽃들은 가을까지 긴 세월을 살지 않지만, 봄의 햇살 때문에 예쁜 꽃을 피우고 마음껏 즐거워한다.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 봄, 모두가 평등한 봄의 향연에 인간을 초대하고 싶다. 예수는 광야 생활과 시험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말씀 앞에 서서 읽은 것이 이사야 6장 내용이었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는 은혜를 선포했다. 인류에게 희망을 주려는 그의 처음 선포가 매우 독특하지 아니한가? 예수부활의 메시지는 봄 향연의 꽃이다. 봄은 희망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준다. 우리 주변의 가난한 자들이 마음껏 작은 꽃들을 피우며 즐거워 할 수 있도록 우리도 그런 봄의 햇살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