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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본다는 것은 걱정이요, 훈련

   추석이라는 의미는 가을 ()에 저녁 ()으로 가을 저녁이라는 뜻이란다. 가을은 결실과 성숙의 때를 말한다. 저녁은 , 쏠리다라는 의미이다. 결실과 성숙의 저녁이 추석인 것이다. 지인들에게 메리 추석 문자를 보냈다. 가을 저녁 축하의 의미를 전했는데 문자 회신 실적이 좋다. 모두들 마음을 전하는 일에 호응하고, 풍성한 가을을 기원했다. 주일이 추석 당일이어서 예배 참석률이 저조했다. 젊은이들은 귀성길에 고향과 시댁으로 가고, 오히려 노인 어르신들이 자리를 채워주셨다. 친척은 아니지만 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필자를 집안어른이라고 생각하며 해마다 명절인사를 오고 있는데 그들의 마음 씀이 고맙고 칭찬을 해주고 싶다. 이런 모습이 삶의 긴 시간을 함께 동행 하는 또 다른 모습 같아 즐겁다. 교회를 개척하고 15년 동안을 함께 동행한 동역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사역자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오늘 우리 교회가 특별한 사역들을 하고 있다. 의미 있고, 감사한 일이다. 특히 아내는 긴 사역을 통해 몸은 많이 고달프고 지치기도 했다. 요즘에는 몸에 탈진 신호가 와서 병원 신세도 많이 지게 되었다.

   지난 추석 전 주간에는 아내가 다리수술을 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 것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수술 전 심장 검사를 하였는데 간수치가 많이 올라가 있어서 몸이 수술을 견딜 수 있는지 의사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을 견딜 수 있는 수치여서 수술을 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수술 준비를 하였다. 수술용 침대에 아내는 누웠다. 지난해부터 아내는 수술을 여러 번 하였다. 수술을 할 때 전신마취를 하였는데 그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였다. 아내도 수술대에 올라 많은 생각을 하고, 필자도 수술 밖에서 수술을 하는 시간동안 기다리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아내는 수술 전 지난 일들을 주마등처럼 떠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잘 될 거야. 마음 편히 먹어요.” 아내 어깨를 가만히 잡아 주었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며 모니터에 나오는 수술준비’, ‘수술 중’, ‘회복 중메시지를 보며 2시간여를 기다렸다. 시간이 빨리 지나고 수술에서 회복 중으로 화면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보호자들의 마음들이 공감이 된다. 아내는 마취주사를 놓고 잠자고 나니 수술이 끝났다고 했다. 수술 동안은 마음 졸였지만 의사는 수술 결과가 좋다고 자기도 고생 많이 했다고 생색을 낸다. 걱정을 하던 사람들에게 지금은 편한 시간이 되어서 모두들 괜찮아 졌다.

   수술을 한 후 병원에서는 다음 날 퇴원하라고 한다. 수술한 다리는 핏자국과 소독약으로 범벅이 되어 흉측하지만 며칠 동안 아내는 회복이 많이 되었다. 연휴기간동안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였다. 강 목사가 다리 수술을 하여 여행을 가는 것은 무리라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는 것도 답답할 것 같아 가까운 장소를 정해 쉬기로 했다. 형님내외와 함께 무의도 1박 여행을 하였다. 형님 내외와는 해마다 연휴 기간을 동행하고 있다. 금년은 무의도에서 숙박을 하고 맛집을 투어하기로 했다. 무의도에는 무의4, 실미도, 하나개 해수욕장, 호룡산의 삼림욕장, 국사봉 등 관광코스와 맛집들이 있다. 경비 분담 계획은 하지 않지만 늘 비용지출은 주고니 받거니 하고 있다. 이번 여행엔 우리가 숙박비용을 대고 형님 내외는 식사를 분담하게 된 것 같다.

   영종대교를 지나 용유도를 거쳐 무의도에는 12시경에 도착을 했다. 용유도 잠진도 선착장에서 자동차를 탄 채로 배를 통하여 무의도에 도착을 했다. 점심은 무의도에 까치집에서 전어구이와 해물전, 그리고 반지락 칼국수를 먹었다. 그 중 전어구이는 가을 진미로 일품이었다. 숙박한 방에선 공항이 보이고, 바다 전망이 좋았다. 창문으론 아주 작은 백사장이 보이고, 멀리 인천대교와 인천시의 야경이 보인다. 저녁을 먹기 전에 근처 호룡산 계곡에서 삼림욕을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산 입구에는 소나무가 있지만 조금 더 들어가니까 삼림욕을 하기엔 잡나무들이 어지러이 있어 중간에 다시 내려왔다. 저녁은 반지락 돌솥밥을 먹었다.

   다음 날엔 국사봉을 등산했다. 아내는 다리가 아프니까 산 밑에서 쉬기로 하고 형님내외와 함께 산에 올랐다. 국사봉은 230미터이다. 오랜만에 등산을 하니 숨이 차고 힘이 많이 들었다. 형님과 나는 등산화를 신었지만 처형은 운동화를 신어 등산하기에는 무리였다. 형님은 등산 초입에서는 앞서더니 산중턱쯤에 이르렀을 때에 뒤로 갔다. “운동화가 미끄러우니 넘어지면 사고 나니까 당신은 여기에서 기다려요.” 형님은 평소에는 산 정상까지 오르지만 오늘은 산 정상 직전 깔딱 고개까지 올라와서는 처형 걱정이 되는 지 내려가자고 한다. 형님은 내려오는 동안 처형이 운동화를 신었으니까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고, 같이 내려가야 하는데 보이지를 않는다고 속으로 걱정을 많이 하시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먼저 있던 곳에까지 가니까 처형은 어떻게 내려 가셨는지 벌써 내려 가셨다.

   본다는 것은 걱정이요, 훈련 같다. 나는 형님께 지켜 볼 때에는 걱정이 많이 생긴다. 안보고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가지요. 우리 삶도 다 그렇지요?” 라고 말했다. 걱정이 되는 가족들도 보면 걱정이 되지만 안보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어느새 부쩍 자란다. 우리 삶에는 지켜 볼 때가 있고, 보지 않고 지나온 일들도 있다. 추석 명절엔 가족들이 서로 보며 지금까지 살아낸 것을 확인하며 열매를 나눈다. 명절에 가족, 친척들을 만날 때에 시간이 지나는 경험을 많이 한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 친척들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