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지인인 최 목사님의 이야기다. 20여전 전에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아내와 아이들과 목사님은 원치 않는 별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3-4번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일이 여행보다는 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고 했다. 하루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마침 중년 여성이 성경책을 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기독교 신자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대화할 수 있겠다 싶어, 최 목사님은 자신이 목사라는 신분은 밝히지 않은 채, 자기가 비행기를 타는 마음을 말했다고 했다. “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감옥에 갇힌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이라기보다는 일이라고 생각이 드니까 비행기를 타는 것이 그렇게 내키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심정을 밝힌 것인데, 상대 중년 여성은 그 말에 대한 반박을 하며 심하게 꾸짖었다는 것이다. “아니, 선생님, 지금 우리나라 국민 중 몇 %가 비행기를 타는 줄 아세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비행기를 타는 데 비행기를 타시면서도 감옥에 있는 기분이라고요? 지금 제 정신입니까? 마음을 바꾸면 지금 형편이 얼마나 큰 복인 줄 아실 거예요.” 난데없는 질책을 받은 목사님은 차라리 목사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부끄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그의 말에 은혜가 되며 한순간 마음을 바꾸면 지옥이 변하여 신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그 녀의 말이 훌륭하여 축복기도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잠간 들었지만 이미 자신이 큰 꾸중을 들은 후라 그 부끄러움에 그냥 헤어졌다고 했다.
추수감사절에 많은 분들이 초대를 받고 오셨다. 특별히 윤 집사님 내외가 자리를 빛내주시고, 윤 집사님은 강사목사님 접대까지 하며 훌륭한 역할을 해주셨다. 강사 목사님은 윤 집사님과 동갑내기라고 하면서 식사 중에 좋은 대화를 많이 하셨고, 나중엔 카톡으로 문자까지 주셨다. ‘감사주일 함께 해서 행복했네요. 따뜻한 대접 받았고, 좋은 분들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개성 있는 목회 모습 보게 된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앞으로 목사님의 기도하는 것들이 다 성취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부족하지만 기도로 성원할 겁니다.’
세월이 지나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맡은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된다. 책임에 대하여 성직자 세 분이 단답식으로 정의를 내렸다. 목사님은 “책임은 자신의 존재이유입니다. 만물이 그 존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인간은 책임을 통해 존재이유를 발견합니다.” 신부가 말합니다. “책임은 너가 나라는 생각입니다. 상대방이 나 자신이라는 일체감을 갖게 되면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스님이 말했다. “책임은 위의 가르침을 깨닫고 아래로 그 깨달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책임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 아픔,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추 등을 놓지 말고 견딜 때에 우리는 존재의 역할을 보여주게 되고, 상대방과 평화를 소유하게 되고, 위에 것을 다음 아래로 향하는 큰 가르침을 보여줄 수가 있을 것이다.
월요일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작은도서관 운영매뉴얼 세미나를 참석하였다. 오는 중에 사서들과 함께 동행하게 되었는데 사서 중 한 사람이 자녀가 이번 수능을 보았다고 했다. 수능 본 자녀를 둔 엄마들이 이야기를 하는 데 속상하다고 한 친구가 이야기를 하더란다. 자기 아들이 수학 한 문제를 틀린 것 때문에 서울대를 들어갈 수 없어서 마음고생이 많다고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심하게 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뭐야?” 하면서 “그러면 연세대나 다른 대학에 가면 되지.” 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서울대 아니면 안된다고 하더란다. 자신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았다고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물수능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만점에 가까운 수험생들이 많다보니 최고 상위 사람들에게는 선택권까지 박탈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음을 바꾼다는 것도 내 소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 될 때는 주도권을 잃게 되어, 그 상실감은 심하게 된다. 추수감사절을 초막절이라고 부른다. 초막절이 축제가 된 이유는 출애굽을 하면서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광야라는 장소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의미부여에 있다. 우리에게도 선택이라는 그 장소에 늘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이 있다면 내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바로 그 곳이 축제의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