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이란 人(인)은 철학이고, 文(문)은 문학이다. 철학과 문학이 만나서 자신의 존재(self-so)의 무늬(결)를 형성하게 된다. 자기고백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를 질문하면 인문을 만날 수 있다. 일종의 의식화랄까? 요즘 인문학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당연한 귀결 같다. 다른 학문은 정답을 획일화하려고 하지만, 인문학은 그렇지 않다. 각 자의 답을 찾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인문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하더니, 복지 분야에서, 심지어 교회에서까지 인문학으로 설교를 하자고 한다. 우리 사회도 인문학으로 보면 흥미롭다.
‘신 콩쥐팥쥐전’ 내용이다. 동네에서 유명한 아이돌 가수가 공연을 한단다. 콩쥐는 준비를 하고 공연에 참석하려 하지만, 계모인 팥쥐 엄마가 큰 항아리를 내 놓으며 여기에 물을 채워 넣으라고 지시를 했다. 공연장엔 팥쥐 엄마와 팥쥐만 참석을 했다. 콩쥐는 상처를 받고 울고 있었는데, 그 때 콩쥐 앞에 두꺼비가 나타났다. 두꺼비가 콩쥐더러 “왜 그렇게 슬피 우느냐?”고 질문을 하니까, 콩쥐는 두꺼비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를 했다. 두꺼비는 콩쥐더러 자신이 항아리에 물을 담아 놓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콩쥐는 두꺼비가 문제를 해결해 놓겠다고 말하니 안심하고 공연장에 가서 아이돌의 공연을 즐기고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두꺼비는 항아리에 물을 채워놓지를 않았다. 콩쥐는 당연히 항아리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콩쥐가 두꺼비에게 항의를 하니 두꺼비 왈, “항아리가 빵꾸났어!” 콩쥐팥쥐전의 두꺼비는 빵꾸 난 항아리 문제를 해결해 주었지만, 신 콩쥐팥쥐전에서는 두꺼비가 빵꾸 난 항아리의 구멍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신 콩쥐팥쥐전의 두꺼비는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두꺼비들은 많이 나타나지만 예산이 없기 때문에 그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도 그렇고, 노인문제도 마찬가지란다.
그리스가 국가 부도상태에 빠졌다. 외신들은 긴축정책에 집착한 채권단과 개혁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시리자 정권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스가 외채를 상환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관점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관점 바꾸기가 인문학이다. 인문학 명강(21세기 북스)을 보면, 삶을 바꾸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했다. 서양고전의 주인공들인 단테, 페트라르카,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은 피렌체 도시 출신들이었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배후엔 메디치 가문이 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이 서양문명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리스가 외채를 갚지 못해서 디폴트 상황에 직면해 있었지만 그리스는 죽음 이후를 생각하던 이집트 문명과 대척함으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찬미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 관심, 사랑, 욕망에 대한 성찰을 하였다.
그리스 인문 전통을 세계유산으로 남겨준 나라이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통하여 인문정신을 탄생시켰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동굴이야기를 통해서 인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플라톤의 동굴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둡고 긴 동굴 안에서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은 횃불에 비치는 그림자 연극을 보고 있다.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는 사람들은 그림자가 진리라고 믿는다. 그 중 한 명이 우연한 기회에 쇠사슬을 풀고, 동굴 밖으로 나간다. 그 사람의 눈에는 사물을 밝게 비추는 이데아 태양을 본다. 이데아를 본 사람은 쇠사슬을 묶인 채 그림자를 진리라고 믿는 동료를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데아를 보여주고 싶은 갈망과 에로스(사랑)이 생기게 된다.
그리스 문명이 쇠퇴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스파르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스파르타는 군사적으로는 강한 나라였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영화 <300>을 보면 장애인을 무시하는 장면이 있다. 장애인은 불구의 몸으로 조국을 위해서 싸우겠다고 자원했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왕은 그를 무시한다. 약자인 장애인을 무시하고 타자인 크세르크세스를 괴물로 묘사했다. 그리스 문명의 폐쇄적 관점이 그리스 문명을 쇠퇴하게 한 이유이다.
로마문명은 끊임없이 도로를 건설했다. 8만 km의 고속도로, 지방도로까지는 30만 km라고 한다. 도로는 신속한 군대이동이 가능하지만, 적이 그 도로를 이용해 로마로 쳐들어 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로마인들이 도로를 건설한 것은 세계와의 소통, 개방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향연을 심포지엄이라고 썼다. sym은 ‘함께’를 뜻하고, posium은 ‘잔’을 뜻한다. ‘함께 마시자’라는 뜻이다. 로마인의 정신을 재탄생시켰던 단테는 향연을 콘비비오라고 번역했다. con은 ‘함께’ 이며, vivio는 ‘살자’이다. ‘함께 살자’는 의미가 된다. ‘함께 마시자’보다 ‘함께 살자’가 인문학 정신이다. 그리스의 위대한 성공과 실패를 통해 새로운 두꺼비들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인문학적 사고라고 생각해 본다.